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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후삼국 시대, 신라는 왜 무너지고 고려는 어떻게 통일했을까?

by 한장의 역사 2026. 7. 16.

통일신라는 한때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했지만, 9세기 후반에 들어 왕실의 권위와 지방 통제력이 약해졌습니다.

 

중앙의 힘이 약해지자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키운 인물들이 등장했고, 결국 신라와 후백제, 후고구려가 경쟁하는 후삼국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세 나라 가운데 고려는 어떻게 최종 승자가 되었을까요?

 

왕건이 전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투의 결과에 따라 지방 세력의 선택이 달라졌고, 신라와의 관계 및 후백제 내부의 권력 다툼도 통일 과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후삼국 시대의 모든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고려가 어떻게 주도권을 잡고 통일에 성공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915년경 발해와 태봉, 후백제, 신라의 세력 구도
915년경 발해와 후삼국의 세력 구도 . 이미지 출처: KJS615,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1. 통일신라는 왜 약해졌을까?

신라 하대에는 왕위를 둘러싼 다툼과 귀족 간의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중앙 정치가 불안정해지면서 지방을 통제하는 힘도 약해졌고, 사회 혼란과 농민 봉기까지 겹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의 유력자들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들을 호족이라고 부릅니다.

 

호족은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점차 벗어났습니다.

 

중요한 점은 신라의 쇠퇴가 단순히 왕실의 권력이 약해진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지방 세력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기존 왕조를 대신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견훤과 궁예가 성장했고, 이들이 각각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후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2. 후백제와 후고구려는 어떻게 등장했을까?

견훤은 900년 완산주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습니다.

 

궁예는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궁예의 나라는 이후 마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습니다.

 

두 나라는 신라의 약해진 영향력을 대신하려 했지만, 세력을 넓히는 방식과 주변 지역을 확보하는 과정은 달랐습니다.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며 군사적 압박을 가했고, 궁예와 뒤를 이은 왕건은 여러 지방 세력과 관계를 맺으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경쟁 구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려는 후백제와 맞서면서 신라와도 관계를 맺었고, 지방 세력의 협력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3. 공산 전투와 고창 전투, 무엇이 달라졌을까?

후삼국의 세력 관계를 바꾼 중요한 계기는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그중 927년 공산 전투와 930년 고창 전투는 전쟁의 주도권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 927년 공산 전투: 후백제가 주도권을 잡다

927년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공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경애왕이 죽고 김부가 경순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출병한 왕건은 공산, 오늘날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군과 맞붙었지만 크게 패했습니다.

 

고려는 이 전투에서 신숭겸과 김락 등 주요 장수를 잃었습니다.

 

반면 후백제는 승리를 거두며 군사적 우위를 보였습니다.

 

당시의 상황만 보면 후백제가 후삼국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듯했습니다.

2️⃣ 930년 고창 전투: 고려가 주도권을 되찾다

그러나 공산 전투의 승리가 후백제의 최종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930년 고려와 후백제는 고창, 오늘날 경북 안동 일대에서 다시 맞붙었습니다.

 

이번에는 고려가 크게 승리했고, 견훤은 물러났습니다.

 

고창 전투의 의미는 단순히 고려가 한 차례 이겼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전투 이후 안동과 청송 일대의 여러 군현이 고려에 귀부했습니다.

 

지역 세력들이 고려의 영향력 확대를 현실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면서 고려에 합류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창 지역의 유력자들이 고려군을 지원한 점도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전투의 결과가 군대의 승패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지역 세력과의 관계 역시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구분 공산 전투 고창 전투
연도 927년 930년
승리한 세력 후백제 고려
주요 영향 후백제의 군사적 우세 고려의 영향력 확대와 지방 세력의 귀부

 

두 전투를 비교하면 후삼국 통일 과정의 중요한 특징이 드러납니다.

 

공산 전투에서 패한 고려는 세력을 유지하며 다시 반격했고, 고창 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4. 고려는 왜 주도권을 잡았을까?

고려가 후삼국 통일에 성공한 이유를 전투에서의 승리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방 세력과의 연합, 신라에 대한 정책, 후백제 내부의 갈등이 서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1️⃣ 지방 세력의 협력을 확보하다

후삼국 시대의 호족은 각 지역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의 협력은 어느 나라가 세력을 넓히는 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고창 전투 이후 고려에 귀부하는 지역이 늘어난 것은 군사적 승리가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고려는 지방 세력의 협력을 바탕으로 세력 기반을 넓혔고, 이는 이후 통일 전쟁을 이어 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신라와의 관계에서 명분을 확보하다

왕건은 신라를 무조건 적대하기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신라를 공격했던 후백제와 달리, 고려는 신라 왕실과의 관계를 활용해 정치적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라는 국력이 약해지고 후백제의 공격까지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나라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결국 935년 경순왕은 고려에 귀부했습니다.

 

이는 고려가 신라를 직접 정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라 왕실의 귀부를 통해 통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3️⃣ 후백제 내부의 권력 다툼을 기회로 삼다

후백제는 고려와의 전쟁뿐 아니라 왕위 계승 문제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맏아들 신검을 비롯한 다른 아들들이 반발했습니다.

 

935년 신검은 정변을 일으켜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탈출한 견훤은 고려로 귀부했습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제 고려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후백제의 내부 결속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고려는 지방 세력과의 관계를 넓히고 신라의 귀부를 이끌어 낸 상황에서 후백제 내부의 분열까지 겹치면서 통일에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5. 운주 전투 이후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1️⃣ 934년 운주 전투: 후백제의 입지가 더 약해지다

930년 고창 전투 이후에도 고려와 후백제의 대립은 계속되었습니다.

 

934년 운주 전투에서 고려는 다시 후백제에 승리했습니다.

 

이 패배는 후백제의 군사적 부담을 키웠고, 고려가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공산 전투에서 우세를 보였던 후백제는 고창과 운주 전투를 거치면서 연이어 타격을 입었습니다.

 

고려는 전투에서의 성과와 지방 세력의 귀부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했고, 후백제는 전쟁과 내부 갈등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2️⃣ 935년 신라와 견훤이 차례로 고려에 귀부하다

935년에는 통일 과정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먼저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갈등 끝에 고려로 귀부했습니다.

 

같은 해 신라의 경순왕도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려에 귀부했습니다.

 

두 사건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견훤의 귀부는 후백제 내부의 권력 다툼과 연결되어 있었고, 경순왕의 귀부는 신라 왕실이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였습니다.

 

고려는 이 과정을 통해 후삼국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3️⃣ 936년 일리천 전투: 후삼국 통일을 완성하다

고려는 936년 후백제를 상대로 마지막 군사 작전을 벌였습니다.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은 후백제군을 격파했고, 신검은 결국 항복했습니다.

 

이로써 후백제는 멸망했고 고려는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후삼국 통일은 한 번의 전투로 갑자기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주도권이 바뀌기 시작했고, 934년 운주 전투에서 후백제가 다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신라의 귀부와 후백제 내부의 분열이 겹치면서 고려가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6. 후삼국 시대 주요 사건과 연도

연도 주요 사건 역사적 의미
900년 견훤, 후백제 건국 후삼국 경쟁 본격화
901년 궁예, 후고구려 건국 신라와 신흥 세력의 경쟁 확대
918년 왕건, 고려 건국 후삼국의 세력 관계 변화
927년 공산 전투 후백제가 군사적 우위를 보임
930년 고창 전투 고려가 주도권을 되찾는 계기
934년 운주 전투 후백제의 군사적 부담 확대
935년 견훤과 신라 경순왕의 고려 귀부 후백제와 신라의 정세 변화
936년 일리천 전투, 후백제 멸망 고려의 후삼국 통일

7. 자주 묻는 질문

Q. 후삼국 시대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일반적으로 후삼국 시대는 후백제가 세워진 900년부터 고려가 후백제를 통합한 936년까지로 설명합니다. 다만 견훤이 892년 무진주에서 세력을 일으킨 시점을 후삼국 형성의 배경으로 함께 다루기도 합니다.

Q. 고려는 왜 후삼국 통일에 성공했을까?

고려의 통일은 군사적 승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창과 운주 전투를 통해 주도권을 넓히고 지방 세력의 귀부를 이끌었으며, 신라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여기에 후백제의 왕위 계승 갈등까지 겹치면서 고려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Q. 신라와 후백제는 같은 방식으로 고려에 편입되었을까?

아닙니다. 신라는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편입되었고, 후백제는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패한 뒤 멸망했습니다. 고려는 외교적 통합과 군사적 정벌을 모두 거쳐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후삼국 시대는 신라의 쇠퇴와 새로운 나라의 등장으로 시작됐지만, 통일의 결과는 단순히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전투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지방 세력과의 관계를 넓혔으며, 신라 왕실의 귀부와 후백제 내부의 분열을 통일의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공산 전투와 고창 전투의 결과가 달랐던 것처럼, 한 번의 승패보다 그 이후 세력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면 후삼국 통일 과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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